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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녀열전③] 淸 무장이 목숨 걸고 지켰던 기녀

기사입력 2017-07-06 11:23:31 | 최종수정 2017-07-10 17: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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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원원(陈圆圆)과 오삼계(吴三桂)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기녀 진원원(陈圆圆)은 청나라 무장 오삼계(吴三桂)가 한 도시의 관문을 열고 적을 토벌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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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원원(陈圆圆)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진원원은 명나라 말기의 기녀로 친화이허(秦淮河) 지역의 절세 기생(秦淮八絶) 8명 중 한 사람이다. 절세 기생은 명나라 말 격렬한 정치 투쟁과 한족·만주족 간의 민족 투쟁 속에 지조를 보였던 이향군(李香君), 유여시(柳如是) 등 8명의 기생을 가리킨다. 중국 언론 웨이라이망(未来网)은 중국 역사를 뒤바꾼 여인 진원원을 소개했다.

진원원은 양모(養母)의 손에서 길러졌다. 본래 성은 형(邢)씨였지만 양모의 성을 따라 진(陳)씨로 바꿨다. 가무(歌舞)와 미모가 뛰어났던 진원원은 윈난(云南)성 쿤밍(昆明)의 가기(歌妓)가 됐다.

그의 삶에는 굴곡이 많았다. 진원원은 전란(戰亂) 때문에 자신이 사랑했던 명말청초의 문학가인 모양(冒襄)과 헤어졌다. 이후 황제의 외척인 전홍우(田弘遇)에게 납치되다시피 베이징으로 끌려간다. 황제가 죽고 세력이 날로 약화되자 전홍우는 당시 권력자였던 무장 오삼계와 가깝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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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삼계(吴三桂)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어느 날 전홍우가 오삼계를 위해 베푼 연회에서 오삼계는 우연히 진원원을 보고 반했다. 전홍우는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오삼계에게 진원원을 바쳤고 오삼계는 진원원을 첩으로 삼았다. 그후 농민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이자성(李自成)이 베이징을 점령해 진원원을 납치했다. 본래 오삼계는 이자성에 투항할 계획이었지만 진원원이 잡혔다는 소식에 노해 중국의 역사상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인 산해관(山海关, 허베이성 도시 관문)을 열고 여진족과 함께 이자성을 토벌했다.

그 후 진원원의 행방에 대한 명확한 사료는 없다. 여러 가지의 설이 전해 내려온다. 진원원을 되찾은 오삼계는 진원원만을 사랑하지 않고 사방관음(四方观音), 팔면관음(八面观音) 등 이름을 떨쳤던 미녀를 관부(官府)에 뒀다. 진원원은 자신이 나이가 들어 다른 여인들과 비교가 안된다고 여겨 불교에 귀의해 말년을 조용하게 보냈다고 한다. 오삼계가 윈난의 평서왕(平西王)으로 즉위한 후 진원원을 데리고 갔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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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전(金殿)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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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궁(太和宫)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오삼계는 진원원과 무더운 더위를 나기 위해 구리로 만든 궁전인 금전(金殿)을 지었다. 당시 황제였던 오삼계는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금전을 나무·흙이 아닌 구리로 만들었다. 쿤밍에 위치한 금전 내 태화궁(太和宫)은 우당산(武当山)의 태화궁을 본떠서 지었다.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최예지 기자 rz@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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